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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 2017년 12월 23일, 페이스북에서 이동됨



뉴비씨 고일석 기자님과 닥표간장 투더코아님 글을 읽고 느낀 바가 있어 몇자 찌끄려본다.


"맞아도 싸다."

고기자님이 이미 밝혔듯이 이 문장이 가지는 함의는 너무 명확하다. 피해자의 그간 행적이 투영될 때 '싸다'라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길 가던 사람이 폭행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듯이 말이다.


여기서는 언론이 '폭력'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을 추정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언론이 물리적 폭력에 대해 지극히 민감하고 현장의 모습을 가능하면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과 전달방식은 대중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교육을 통해 지성화, 문명화 되었어도 인간은 폭력이라는 원시적 욕구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부분에서 언론의 지성주의는 진화를 멈췄다해도 무방하다.


현대 사회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 왕따로 표현되는 사회적 따돌림!

- 여성을 훑어보는 남성의 시선!

- 익명성에 숨은 악성 댓글!

-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다양한 착취! 등등등


문명화 될수록 폭력은 비물리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물리적인 폭력과 확연히 다른 형태라 대중들은 이것이 폭력이란 사실을 쉽게 인지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발전된 형태의 폭력은 그 충격이 물리적 폭력을 압도한다.


스마트폰과 SNS의 출현은 집단지성을 현실화시켰고 지속적인 발전을 유인한다. 그 속에 포함된 개인은 그 일원으로서 집단지성이 도출한 방향성을 학습하며 사고를 발전시킨다. 그 결과 대중은 이미 비물리적인 폭력과 물리적인 폭력을 동일 선상에 놓고 판단할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불행히도 언론지성은 이런 변화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듯 보인다.

지금 펼쳐지는, 언론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이런 지적수준의 불균형에 기인한다.


이쯤에서 다시 꺼낼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노무현, 문재인을 향한 언론의 무도한 공격은 스스로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명백한 폭력이다.

언론은 유독 두 사람에게만 혹독했고, 무자비했고, 이유불문이었고, 집요했고, 악의적이었다.

그리고 그 폭력은 두 사람을 거쳐 무수히 많은 일반 대중들에게 전달됐다.

상처입고, 지치고, 쓰러지고, 외면하고, 맞서 싸우기도 하면서 긴 시간을 버텨왔다.

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맞아도 싸다."는 가볍게 순간적인 충동으로 뱉어낸 말이 아닌 것이다.


기자들은 말한다. 기자란 직업이 원래 물불 안가리고 돌진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경호원이란 직업이 원래 물불 안가리고 VIP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기자들은 또 말할지 모른다. 힘없는 기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과잉경호였다고.

내 대답은 이렇다. 기자들은 지난 십수년 간 노무현, 문재인에게 항상 과잉 보도, 심지어는 왜곡되고 거짓된 보도를 통해 끊임없이 기회 있을 때마다 폭력을 행사했다고.


그리고 언론은 폭행 사건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무기를 이용하여 융단폭격(5일 간 4만 건의 관련뉴스)에 가까운 복수를 하고 있다.

경호원의 폭력과 언론의 폭력!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자신들의 폭력성을 깨닫을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언론의 지성주의는 시민들의 지성과 다른 하위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에게 인간의 의식세계를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싸우는 수 밖에.


뉴비씨 고일석 기자님의 글;

https://www.facebook.com/goandgo1/posts/1658563624208470?pnref=story


닥표간장 투더코아님의 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906427166211570&id=100005328844382&pnref=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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